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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지능, 진단보다 배려 먼저” ...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홍순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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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대건강신문 2025. 7. 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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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지능, 진단보다 배려 먼저”

경계선지능 아동, 느린 성장을 지지하는 사회가 필요

학습도, 놀이도 느린 아이들… “성장 속도 맞춘 지원 필요”

정서·사회성 훈련과 동반 질환 치료 함께 이뤄져야

“학업보다 삶의 만족”… 부모와 사회의 인식 전환 필요

[현대건강신문] 경계선지능 아동은 또래보다 학습과 적응 속도가 느리다. 이들에게는 자신만의 속도에 맞는 성장 환경이 필요하지만, 진단이 쉽지 않은 특성상 학교와 일상에서 충분한 배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계선지능 아동의 특징과 어려움, 그리고 가정과 사회에서 제공할 수 있는 교육적 지원 방안을 소아정신과 홍순범 교수와 알아봤다.

지능은 학습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말한다. 경계선지능은 일반적으로 지능지수(IQ)가 지적장애(70 이하) 진단 기준보다 조금 더 높은 70~85로 측정되는 경우를 일컫는다. ‘장애’로 평가되는 단계는 아니다.

최근에는 경계선지능 진단을 위해 IQ뿐 아니라 보다 종합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지적 기능 외에도 의사소통, 사회성, 자기관리 등 사회활동에 필요한 ‘적응 기능’이 평가 기준으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경계선지능 아동은 지적장애 아동만큼은 아니지만, 또래들보다는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다. 말 그대로 ‘경계’에 해당하는 애매한 어려움이며, 그렇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어렵다. 처음 입학했을 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학업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점부터 의심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입학 전부터 늦은 언어 발달이나 이해력 부족이 보여 경계선지능을 조기에 의심할 수도 있다. 다만, 경계선지능은 정상적인 또래와 비교했을 때에야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어, 또래가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적은 시기에는 대개 잘 발견되지 않는다.

학습은 학교에서의 공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교우관계에서도 지속된다. 경계선지능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 때 놀이의 규칙을 늦게 이해하거나,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잘 터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놀이에 잘 끼지 못하고 소외되며, 교우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부모와의 관계가 나빠지기도 한다. 부모는 이해력이 부족하고 학습이 느린 아이를 보며 답답함을 느끼고, 주로 야단을 쳐서 이를 극복하려 한다. 그러나 밖에서도 또래를 따라가기 힘들다고 느끼는 아이가 가정에서마저 자주 혼나게 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의욕을 잃기 쉽다. 이로 인해 부모에 대한 원망이 커지기도 한다.

경계선지능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교육적 도움’이다. 이는 아이의 학습 수준에 맞는 교육을 의미한다. 또래와 같은 공부를 하며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보다는, 본인의 수준에 맞는 공부를 통해 내용을 이해하고 발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학습 진도가 다소 뒤처지더라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억지로 배우는 것보다 정서적으로도 훨씬 바람직하다.

또한 적응 기능을 향상시키는 훈련도 중요하다. 적응 기능에는 의사소통, 사회성, 자기관리, 생활 및 운동 기술 등이 포함된다. 아이의 지능이 낮더라도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러한 기능은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다. 청소년기의 경우, 진로 상담과 직업 훈련이 적응 기능을 높이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울, 불안, ADHD 등 동반 질환 치료도 필요하다. 경계선 아동은 또래보다 이러한 질환을 더 흔하게 겪는다. 해당 질환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병행되면, 교육적 도움의 효과도 더욱 커질 수 있다.

가정에서는 아이를 끈기 있게 기다려 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아이의 학습 수준에 맞춰 학업과 일상생활에 대한 교육을 가정에서 미리 실천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또래보다 놀이의 규칙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계선지능 아동을 위해 부모가 아이와 함께 놀이를 미리 해 보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아이가 남들보다 느리게 보일지라도, 자신의 속도에 맞춰 발전해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과도한 기대와 방임은 모두 피하고, 또래보다 늦더라도 성취를 이뤘을 때는 아낌없는 칭찬과 축하를 전해야 한다.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홍순범 교수는 “복싱이나 레슬링에서 100kg인 사람이 50kg인 사람과 경쟁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마찬가지로 IQ가 140인 사람과 70인 사람이 학업으로 경쟁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지능은 체중처럼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경쟁이 공정하다고 착각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지능이 낮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학업 경쟁에 집착하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다”며 “동시에 부모의 부담도 사회적으로 덜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똑똑한 아이를 명문대에 보낸 부모가 아니라, 똑똑하지 않은 아이를 행복한 성인으로 키운 부모가 더 존중받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