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산별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 개최
“공공병원 자부심으로 버텨왔는데, 결국 임금 체불”
산별중앙교섭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잠정 중단… “8일 노동쟁의조정 신청 예정”
[현대건강신문=박현진 기자] “작년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제가 일하는 부서가 폐쇄됐다가 다시 열렸는데, 10개가 넘는 진료과 환자들이 몰리다 보니 업무량이 너무 많습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소속 조합원들은 지난 2일 서울 숭례문 앞에서 ‘보건의료노조 산별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열고, 의정 갈등으로 혼란에 빠진 의료현장과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공공병원에서 발생한 임금 체불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가 ‘9.2 노정합의’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국민 주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윤석열은 파면되었다”며 “의정 갈등을 조장하고 의료현장을 붕괴시킨 윤석열표 의료개혁은 끝났고,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완전히 실종된 9.2 노정합의를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가한 의료진들은 의정 갈등으로 인한 업무 과중을 토로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간호사 허단비 조합원은 “작년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부서가 폐쇄됐다가 다시 열리면서, 여러 외과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간호하는 병동으로 바뀌었다. 10개 넘는 과가 있다 보니 업무량이 너무 많다. 밀려드는 입원 환자와 수술 환자들로 인해 식사 시간은 물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매일 연장 근무를 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몸도 마음도 지쳐 많은 간호사들이 퇴사했고, PA(진료보조인력)로 병동을 떠난 이들도 있다. 많은 신규 간호사가 입사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에 대부분 교육 중 퇴사하고, 단 한 명만이 남아 적응해 일하고 있다”며 의정 갈등으로 인한 현장의 어려움을 전했다.
또한 “2021년 9.2 노정합의를 통해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과 인력 기준 마련에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는 9.2 노정합의를 이행해 간호사도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 보건의료노동자도 땀 흘린 만큼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청주의료원 물리치료사 서운교 조합원은 “코로나 이후 환자 수가 줄었다는 이유로 저희 부서는 각종 교육사업과 지원사업 등 부수적인 업무를 맡게 됐다”며 “환자 수가 회복된 이후에도 이러한 업무는 계속됐고, 부서원들은 한계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병원은 적자라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더 많은 희생과 노력을 요구했고, 지난 6월에는 정기 상여금의 80%가 체불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 조합원 “헌혈의 집 간호사들, 장시간 노동 악순환”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에서 일하는 홍다현 조합원은 “대한적십자사는 혈액사업을 국가로부터 위임받아 수행하고 있다. 상시적인 혈액 보유량 부족과 인력 부족으로 혈액 사업장의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혈의 집 간호사들은 평일, 주말 없이 출근해야 한다.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말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헌혈의 집에서 채혈한 혈액은 혈액원으로 옮겨지는데, 혈액제제 업무는 밤 10시~11시까지 계속된다”며 장시간 노동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산별총파업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대형병원 미화 업무 담당자 “실질 임금 줄고 노동 강도 악화”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미화 업무를 담당하는 서명숙 조합원은 “작년 의정 갈등으로 의료공백 사태가 발생하자, 병원은 비상경영 방침이라며 노동시간을 줄이고 부서를 통폐합했다. 실질 임금은 줄고 노동 강도는 악화됐다. 병원은 하도급 업체를 통해 마음대로 인력을 감원하지만, 우리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병원장과 직접 교섭해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통해 원청과의 교섭권을 쟁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조합원은 “공공병원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버텨왔는데,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이런 상황이라 너무 억울하고 슬프다”며 “공공의료를 위해, 노력한 만큼 충분히 보상받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함께 투쟁하자”고 호소했다.
호남권역재활병원 작업치료사 “연차 사용을 제한 규정 수십 가지 만들어”
호남권역재활병원 작업치료사 이은서 조합원은 “인력 기준이 없다 보니 적은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일상이다. 재활병원 특성상 치료사가 쉬지 않아야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이유로, 병원은 연차 사용을 제한하기 위한 기준 제한 규정을 수십 가지 만들어 연차 사용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수년간 이어져 온 악행을 노동조합과 함께 작년에 없앴지만, 인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없다”며 “적정한 인력 기준 마련과 인력 충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방사선사 “병원 필요 인력 충원 외면”
아주대병원 방사선사 이재 조합원은 “비정규직으로 대학병원 생활을 시작해 무려 6년을 버티며 정규직이 됐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차별과 불안을 견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규직이 된 이후에도 어려움은 계속됐다”며 “병원이 필요한 인력 충원을 외면하면서 방사선사의 근무 강도는 높아졌고, 환자 안전은 뒷전이 됐다. 방사선사 인력 기준은 마련되지 않고 의료사고는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방사선사 인력 기준의 법제화와 필수 인력의 즉각적인 충원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4월 9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올해 교섭 요구안과 투쟁 방침을 결정했다. 5월 7일 산별중앙교섭 상견례를 시작으로 6월 25일까지 총 7차례 교섭을 진행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현재 교섭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보건의료노조는 현재 진행 중인 특성 교섭과 현장 교섭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오는 8일 노동위원회에 일괄로 노동쟁의조정을 신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