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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강신문=여혜숙 기자]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중환자의료체계가 단순한 병상수 확장을 넘어 질적 도약을 이뤄낼 수 있도록, 근본적인 정책 전환과 국가적 투자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25일 코엑스마곡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대한중환자의학회 국제학술대회(KSCCM-ACCC 2025) 기자간담회를 통해 중환자 진료 질 향상 방안에 대해 밝혔다.
2024년 2월부터 정부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의 공정성 제고를 4대 축으로 하는 의료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학회측은 그러나 이러한 개혁 과정에서 중환자 진료의 질 향상을 위한 포괄적인 논의는 철저히 배제되었고, 현재 의료 현장에서는 병원마다 ‘최소 기준’만을 충족시키는 중환자실 병상 확충에만 몰두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의료계는 그간 중환자실 병상 확대와 장비 보강 등, 이른바 ‘양적 팽창’에 많은 자원을 투입해 왔다. 이는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보건위기 상황에서 일시적인 대응 기반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확장만으로는 선진국 수준의 중환자의료체계를 구성하는 핵심인 질적 개선을 결코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학회는 “단순히 병상수를 늘리는 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의료개혁인지, 그리고 그것이 선진국형 중환자의료체계로의 발전을 이끄는 올바른 방향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반문했다.
홍석경 대한중환자의학회 기획이사(서울아산병원)
홍석경 대한중환자의학회 기획이사(서울아산병원)는 전담 전문인력의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홍 기획이사는 “2024년 중환자실 수가가 많이 인상됐다. 이는 복지부가 수가를 현실화 시켰기 때문이다”라며 “문제는 중환자실 전담 인력에 대한 수가가 높아지면서 상급종합병원 인력이 이차병원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과 요양병원 중환자실의 경우 환자 중증도 차이가 많이 나지만, 수가가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현실을 지적했다.
단순히 중환자 병실 수만 늘어나다보니 상대적으로 전담 전문의의 월급도 많고, 중증도가 낮은 이차병원이나 요양병원 등으로 중환자 전문인력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홍 기획이사는 “의정갈등으로 전공의가 대거 이탈하면서 중환자실 교수들이 당직을 서고 있다. 현재 중환자실 전담 전문인력이 이탈하는 것은 비전이 없어서가 아니라 힘들어서 그렇다”며 “많이 힘든 것이 맞다. 교수들이 중환자실 당직을 서고 있는데 일반 당직이랑 달리 중환자실 당직은 한숨도 못잔다. 이렇게 단순이 병실만 늘리면 중환자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회 측은 현재 우리나라의 중환자의료체계는 △전담 전문인력의 절대적 부족 △진료 표준화의 미비 △다학제 협력의 한계 등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실제 환자에게 제공되는 치료의 질은 국제적 기준에 현저히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대한중환자의학회 조재화 회장(세브란스병원)은 “중환자 진료는 병상과 장비의 숫자로만 해결되는 영역이 아니다.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며 “지금 우리는 ‘양’에서 ‘질’로의 전환점에 서 있다. 중환자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강력한 정책 개입과 함께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중환자의학회 조재화 회장(세브란스병원)
학회 측에서 주장하는 개혁 과제는 △중환자의료 전담 전문인력의 양성과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적 지원 확대 △전국 단위의 중환자 진료 표준화 및 질 관리 체계 수립 △다학제 기반 협진 및 중환자 재활 연계를 포함한 통합 진료체계 구축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중환자의료 정책 수립 및 예산 지원 강화 등이다.
조 회장은 “중환자실은 의료체계의 마지막 보루다. 감염병 유행과 같은 사회적 의료재난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이 보루의 취약함을 뼈저리게 경험해 왔다”며 “특히, 이번 의료개혁의 방향 속에서 중환자의료체계 강화가 제외된다면,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 우리나라의 중환자 진료 수준은 지금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학회는 1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재 국내의 중환자 치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 의료위기를 극복하기위해, “Reviving ICUs, Restoring Hope” 를 슬로건으로 진행됐다.
학술대회 전날은 시뮬레이션을 통한 중환자실에서의 환자이송 워크샵이 진행됐다. 또, 학술대회 첫날은 패혈증, 수혈, ECMO, 기계환기 전략 등의 중환자의학의 핵심적인 내용과 더불어, 다학제적인 진료가 요구되는 중환자의료 현장을 반영해 신경계, 순환기계, 신장대체요법, 약리학 등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분들의 강의가 진행됐다.
둘째날은 한국-일본 중환자의학회간의 협업 세션으로 진행되며 중환자의 재활, 중환자 의료진의 번아웃, 그리고 현재 중환자의학 분야에서의 국제적인 협력상황과 향후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 논의했다. 또, 신경계 중환자의학, 외과계 중환자, 외상환자, 뇌사환자들의 진료에 대한 강의와 함께 의료기술 분야에서 현재 AI의 적용현황 및 미래의 발전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아울러 쇼룸(Showroom)에서는 환자의 중증도 및 경과에 따라 4개의 세션(중증, 경증,준증증, 초음파와 시연공간)으로 나누어 각각의 단계에 있는 환자의 치료에 필요한 약품 및 최신 의료기기 제품을 접할 수 있도록 전시했다.